합법적으로 하는 시위 중에서 답답한 약자의 의견을 합법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여러가지 방법이 있다.

유모차를 끌고 오거나,  강아지를 데리고 오는것은 일반 중산층의 원하는것을 전달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 한국에서도 유모차 부대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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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멘의 악대처럼 음악을 연주하는것도 이것은 합법적이고 민주적이지만 그들의 간절한 소망을 전달하기 위한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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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뿌뿌 부는것. 이것도 효과적인 시위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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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시위중에서도 냄비시위는 정말 시끄럽다. 냄비. 후라이팬을 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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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냄비 시위가 유명하게 된것은 아르헨티나. 막판까지 엉망징창이 되던 아르헨티나 경제 상황에서,

누가 먼저 했는지 할것없이 어느날 밤, 집집 마다 나와 두드리게 된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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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비를 두드리는것은 정말 생존에 대한 요구인 것이다. 먹고 사는 가장 기본적인 도구를 뚜드리며

말귀를 못알아 듣는 불통의 대상에게 절박하게 외치는 것이다.

참고로 이 시위는 등록금 인상 반대 시위다.

한국 등록금 상승률에 비하면 껌값인데도 난리였고, 결국 받아 졌다.

한국은 OECD국가 중 등록금 상승률이 지난 10년간 가장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다.

놀라운 나라다.

대학도 무지 많고, 사교육 비도 환상적이고, 등록금은 따블로 오르고.

잘못된것이다.

결국 반값 등록금은 조삼모사에 넘어가 현실화 되지 않았지?

개인이 열심히 노력하지 않으면 못살고 학교 다닐때 공부 열심히 안하면 못사는것은 당연해야 한다고

말해도, 즉 행복은 성적순이라지만 (이것도 사실 잘못되었지만)

그래도 개인이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취직해서 열심히 성실하게 살면서도 사회적 비용을  떠안는 ‘고비용 구조’는 받아들이면 안된다.

사회적 비용은 교육, 육아, 결혼 등 어느 국가에나 공통적인 기본 비용.

그러나 한국은 결혼, 육아, 사교육 등에서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되는 비용을 개인이 떠안아야 한다.

이런식이면 중국이나 일본에서 공립학교 보내고 사는거 보다 덜 행복할걸?

내가 한국에 산다면 집안 냄비 들고 마구 뚜드릴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