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한때 우리 모두의 것이었던 AI
불과 몇 년 전 ChatGPT가 처음 등장했을 때, 우리는 기술이 선사하는 새로운 시대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었습니다. 마치 거대한 도시의 광장이 모두에게 활짝 열린 사건과 같았지요. 우리는 그곳에 모여 언어의 장벽 없이 대화하고, 창작의 영감을 얻으며 인공지능이 펼쳐 보인 새로운 풍경에 감탄했습니다.
그것은 분명 모두에게 주어진 초대장이었습니다. 코드를 모르는 작가도, 평범한 학생도, 호기심 많은 은퇴자도 모두가 동등한 출발선에서 새로운 지평을 탐험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 평등했던 축제의 경험이 있었기에, 최근 거대 기술의 흐름에서 느끼는 거리감은 더욱 서늘하게 다가옵니다. 한때 우리 손에 쥐어졌던 초대장이 조용히 회수되고 있다는 이 낯선 감정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
초대받지 못한 손님들의 시대
최근 테크 저널리스트 이그나시오 데 그레고리오(Ignacio de Gregorio)가 던진 ‘이제 당신이 초대받지 못한 새로운 AI 시대가 시작된다(Today’s the start of a new AI era you aren’t invited to)’는 도발적인 제목은, 이러한 변화의 흐름을 날카롭게 포착합니다. 이 제목이 암시하듯, 광장의 축제가 끝나고 소수만이 입장할 수 있는 ‘그들만의 살롱’이 열리고 있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만약 초기의 AI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공 도서관이었다면, 지금 등장하는 차세대 AI 모델들은 소수에게만 허락된 비밀 서고와 같습니다. 이 서고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열쇠, 즉 엄청난 컴퓨팅 자원과 천문학적인 비용이 필요합니다. 일부 거대 기업과 연구소만이 그 열쇠를 쥘 수 있는 구조가 빠르게 고착화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AI가 여전히 유용하긴 하지만, 기술 발전의 최전선은 이제 우리의 시야와 손길이 닿지 않는 저편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느끼는 소외감의 근원일 겁니다.
새로운 ‘인지적 계급’의 탄생
이러한 변화를 단순히 ‘더 빠르고 똑똑한 도구’에 대한 접근성 문제로만 치부할 수 있을까요? 이는 어쩌면 새로운 ‘인지적 계급’의 탄생을 예고하는 신호일지 모릅니다.
역사적으로 인쇄술이 지식을 독점하던 소수 성직자의 권위를 무너뜨렸듯, 가장 강력한 사유의 도구를 누가 손에 쥐느냐는 사회의 권력 구조를 결정해왔습니다. 만약 가장 정교하고 방대한 정보를 처리하며 창의적 발상을 돕는 능력이 소수에게 독점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문제 해결 능력, 창의적 발상, 심지어 세상을 이해하는 깊이마저 기술에의 접근성에 따라 격차가 벌어질 수 있다는 전망은 우리에게 꽤 무거운 질문을 던집니다. 이는 단순한 기술 격차(Digital Divide)를 넘어, 생각의 격차, 나아가 존재의 격차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광장에 남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그렇다고 우리가 영원한 관객으로 남아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초대장이 회수된 살롱의 문을 억지로 열려고 애쓰기보다, 우리는 광장에 남은 이들로서 새로운 역할을 찾아야 합니다.
비밀 서고 안에서 어떤 기술이 만들어지는지, 그 지식이 어떻게 세상을 바꾸려 하는지를 날카롭게 질문하고 감시하는 비판적 관찰자의 역할이 바로 그것입니다. 기술의 능동적 사용자가 되는 것만큼이나, 그 기술이 만들어내는 사회의 책임 있는 시민이 되는 것이 중요해지는 시대입니다.
화려한 파티는 끝났을지 모르지만, 광장은 여전히 우리의 공간입니다. 이제 이 광장에서 우리는 무엇을 이야기하고, 어떤 미래를 함께 그려나가야 할지 진지하게 성찰해야 할 시간이 온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