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영상이 ‘지능을 가진 3D 모델’이 된다면

우리는 매일 스마트폰으로 수많은 순간을 기록하지만, 대부분은 디지털 서랍 속에 잠자는 평면적인 데이터에 머무릅니다. 하지만 만약 이 평면의 기록에 깊이와 지능을 불어넣을 수 있다면 어떨까요? 기술은 이제 그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고 있습니다.

‘지능을 가진 3D 모델’이란, 단순히 영상 속 공간을 3차원으로 복제하는 것을 넘어섭니다. 그것은 컴퓨터가 그 공간을 ‘이해’하게 만드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마치 우리가 어떤 방에 들어갔을 때, 단순히 벽과 바닥의 형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저것은 책상, 이것은 의자’라고 자연스럽게 인지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상상해보죠. 당신이 무심코 촬영한 거실 영상이 있습니다. 이 기술은 그 영상을 바탕으로 거실의 3D 공간을 만들고, 거기에 더해 ‘이것은 소파이고, 저것은 스탠드 조명이며, 소파 위에 쿠션이 놓여 있다’는 식으로 스스로 사물을 식별하고, 관계를 파악하고, 속성을 부여합니다. 영상은 더 이상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분석하고 상호작용할 수 있는 살아있는 데이터로 진화하는 셈입니다.

마법의 레시피: 세 전문가의 협업

그렇다면 이런 마법 같은 일은 어떤 기술들의 협연으로 가능해질까요? SAM(Segment Anything Model), CLIP, DINO와 같은 복잡한 기술 용어 대신, 세 명의 전문가가 하나의 정교한 조각품을 만드는 과정에 빗대어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 첫째, 공간의 뼈대를 세우는 ‘건축가’

    가장 먼저, 영상의 여러 프레임을 분석해 3차원 공간의 기본 구조, 즉 점과 선으로 이루어진 뼈대를 만듭니다. 여러 각도에서 찍은 사진을 합쳐 3D 모델을 만드는 ‘포토그래메트리(Photogrammetry)’와 유사한 원리입니다. 모든 작업이 이루어질 디지털 캔버스가 이렇게 탄생합니다.

  • 둘째, 대상을 정교하게 오려내는 ‘조각가’ (SAM)

    다음으로 SAM과 같은 분할(Segmentation) AI가 나섭니다. 이 모델의 역할은 명확합니다. 완성된 3D 공간 속에서 의미 있는 대상들을 하나하나 경계선에 따라 정교하게 분리해냅니다. 아직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배경과 구분되는 어떤 사물’이라는 점을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인지합니다.

  • 셋째, 이름과 의미를 부여하는 ‘언어학자’ (CLIP & DINO)

    마지막으로 CLIP이나 DINO와 같은 모델이 등장해 조각가가 오려낸 각 사물에 이름표를 붙여줍니다. 이미지와 언어를 함께 학습한 이 모델들은 분리된 사물의 형태를 보고 ‘이것은 책이다’, ‘저것은 식물이다’라고 언어적 의미를 부여합니다. 이로써 비로소 단순한 덩어리가 ‘지능을 가진 객체’로 완성됩니다.

기술을 넘어, 기억과 공간을 사유하다

이러한 기술이 단순히 흥미로운 볼거리를 넘어 우리의 삶과 사유를 어떻게 확장시킬 수 있을까요? 이는 ‘기억’과 ‘공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잠재력을 품고 있습니다.

첫째, 기억의 방식이 변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기억은 동영상처럼 선형적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특정 사물, 감정, 관계를 중심으로 공간을 회상하죠. 이 기술은 우리의 불완전하고 의미 중심적인 기억 방식을 디지털로 구현하는 듯 보입니다. 미래에는 단순히 과거 영상을 돌려보는 대신, ‘내가 스무 살 때 살던 자취방의 책상’이라는 객체를 디지털 공간에서 꺼내어 상호작용할 수 있게 될지도 모릅니다.

둘째, 공간과 소통하는 새로운 언어가 생겨납니다. 만약 미래의 AI에게 “이 집에서 아이가 가장 좋아했던 장난감을 찾아줘”라고 말한다면 어떨까요? AI는 의미가 부여된 3D 모델 데이터를 분석해 그 답을 제시할 수 있을 겁니다. 이는 우리가 공간을 서술하고 이해하는 방식에 새로운 차원을 더하는 일입니다.

물론 그림자도 존재합니다. 모든 것이 식별되고, 측정되고, 라벨링될 때, 우리가 눈으로는 느끼지만 언어로는 정의할 수 없는 공간의 ‘분위기’나 ‘온기’ 같은 것들은 사라지지 않을까요? 방 안을 가득 채운 오후의 햇살이나 낡은 책에서 나는 냄새는 어떤 라벨로도 정의될 수 없을 겁니다. 기술이 세상을 명료하게 해석할수록, 우리는 그 명료함이 놓치는 세계의 다른 절반을 더욱 소중히 여겨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