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을 다운로드하는 시대

요즘 인터넷을 거닐다 보면, 한때 신화 속 거인의 이름이었을 법한 ‘크로노스’ 같은 AI 모델의 이름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특히 “수학 학위 없이 주식 시장 예측하기”와 같은 제목과 결합될 때, 그 유혹은 더욱 강렬해진다. 이것은 단순한 기술 안내서를 넘어, 우리 시대의 욕망과 불안을 비추는 거울처럼 느껴진다.

과거의 사람들은 신탁을 듣기 위해 먼 길을 떠나거나, 복잡한 제물을 바쳐야 했다. 오늘날 우리는 클릭 몇 번으로 미래를 점치려는 시도를 한다. ‘크로노스’라는 이름의 AI 모델을 미세조정(fine-tuning)하여 시장의 등락을 예측한다는 아이디어는 바로 그런 현대적 신탁의 한 형태일 것이다.

이러한 안내서들이 내세우는 가장 매력적인 약속은 ‘전문 지식 없이도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는 마치 누구에게나 예언의 능력을 나누어 주겠다는 선언처럼 들린다. 과거 소수의 전문가, 이른바 ‘퀀트’라 불리는 금융 수학자들의 전유물이었던 영역이 이제 모두의 컴퓨터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이해 없는 제어라는 환상

하지만 이 과정에서 우리가 얻는 것은 과연 ‘지식’일까? 우리는 모델의 내부 작동 원리를 이해하는 대신, 데이터를 입력하고 결과를 해석하는 절차를 배운다. 이는 마치 정교한 기계의 스위치를 켜고 끄는 법을 익히는 것과 비슷하게 느껴진다.

기계가 왜 그렇게 작동하는지는 블랙박스 안에 남겨둔 채, 우리는 그저 결과만을 취한다. 기술은 우리에게 복잡한 현실을 ‘이해’하는 수고를 덜어주는 대신, 손쉽게 ‘제어’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는 듯하다. 어쩌면 이 환상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중독성을 지닌 것일 수 있다.

데이터를 바치는 현대적 제의

모델을 ‘파인튜닝’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하나의 의식(ritual)처럼 보인다. 과거의 데이터를 모아 ‘학습’시키고, 가상의 투자로 ‘검증’하며, 마침내 미래에 대한 ‘예측’을 얻어내는 일련의 행위들. 이 과정에 참여함으로써 우리는 불확실성이라는 거대한 존재 앞에서 무언가 의미 있는 행동을 하고 있다는 위안을 얻는다.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이 행위 자체는 우리에게 통제감을 부여하는 듯하다. 혼돈처럼 보이는 시장의 움직임 속에서 나만의 질서를 구축하려는 시도, 그것이 바로 이 현대적 제의의 본질이 아닐까. 우리는 어쩌면 정확한 예언보다 그 예언을 구하는 과정 자체를 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모두가 예언에 성공한다면

만약 상상해보자. 이 ‘크로노스’라는 모델이 정말로 완벽하게 주식 시장을 예측하고, 모두가 이 도구를 사용하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모두가 오를 것을 아는 주식은 이미 그 가치가 반영되어 더 이상 오를 수 없고, 모두가 내릴 것을 아는 주식은 팔 사람만 남아 거래가 성립되지 않는다.

이 예언 도구의 성공은 역설적으로 그 도구를 무력화시킨다. 결국 이 기술의 유용성은 그것이 소수에게만 알려진 비밀일 때, 혹은 대부분의 경우 틀릴 때만 성립하는 셈이다. 이는 기술을 통한 부의 추구가 본질적으로 제로섬 게임의 속성을 벗어나기 어려움을 시사하는 듯하다.

우리가 정말로 원하는 것

결국 ‘크로노스’를 이용해 시장을 예측하려는 시도는 기술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이야기로 귀결된다. 우리는 불확실성을 견디기 힘들어하고, 지름길을 통해 부와 안정을 얻고 싶어 한다. 기술은 바로 그 욕망을 파고들어 새로운 형태의 희망과 환상을 제공한다.

어쩌면 우리는 주식 시장의 미래가 아니라, 기술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는 더 큰 예언을 믿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내 컴퓨터에서 조용히 돌아가는 작은 예언 기계는, 결국 통제할 수 없는 세상 속에서 작은 통제감이라도 붙잡고 싶은 우리 자신의 모습을 비추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