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수학자의 가상 비망록
저는 종종 낡은 종이 수첩에 생각을 적습니다. 문장이 되지 못한 단어들, 앞뒤가 맞지 않는 상념의 파편들이 그 안에 뒤섞여 있죠. 누구에게도 보일 수 없는, 오직 나만이 해독할 수 있는 생각의 원석들입니다. 그 지저분하고 내밀한 공간이야말로 창작의 진짜 밀실이라고, 저는 믿어왔습니다.
최근 미래의 어느 시점을 배경으로 한, 소설처럼 느껴지는 한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인공지능 기업 OpenAI가 90년 묵은 수학 난제인 ‘나비에-스토크스 방정식’을 AI로 해결했다고 발표하는 가상의 시나리오였죠. 하지만 곧이어 한 수학자가 나타나, OpenAI가 자신의 연구 데이터를 무단으로 사용해 결과를 선점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OpenAI의 코딩 AI를 1년간 사용하며 자신의 연구 과정을 기록했는데, 기업이 그 기록을 몰래 들여다보고 해답을 가로챘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허구의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이야기가 그저 상상 속 경고로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등 뒤에서 서늘한 바람이 부는 듯한 현실감을 느꼈습니다.
과정의 소유권, 생각의 주권
우리는 보통 ‘결과물’에 대한 권리를 이야기합니다. 완성된 논문, 출판된 책, 공개된 발명품이 바로 그것이죠. 그러나 이 가상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결과에 이르는 ‘과정’은 과연 누구의 것일까요?
그 수학자가 잃어버린 것은 단순히 방정식의 해답만이 아닐 겁니다. 수많은 밤을 새우며 시도했던 실패의 기록들, 막다른 길에 부딪혔던 좌절의 순간, 그리고 마침내 실마리를 잡았던 ‘아하!’의 그 찰나까지, 자신만의 지적 서사 전체를 도둑맞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에게 AI는 더 이상 생각을 돕는 도구가 아니라, 자신의 내밀한 사유를 엿보는 감시자였던 셈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디지털 도구들은 더 이상 수동적인 연필이나 망치가 아닙니다. 그것들은 우리의 습관을 학습하고, 다음 단어를 예측하며, 심지어 우리의 생각을 분류하고 정리해주기까지 합니다. 우리는 그 편리함 속에서, 우리의 사유 과정이 고스란히 데이터로 기록되고 있다는 사실을 잊곤 합니다.
신뢰가 무너진 작업실
만약 당신이 일기를 쓰는 작가라고 상상해봅시다. 그런데 당신이 쓰는 만년필이 매일 밤 당신의 가장 깊은 비밀을 제조사로 전송하고 있다면, 당신은 계속해서 그 펜으로 글을 쓸 수 있을까요? 창작의 행위는 도구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이루어집니다. 도구가 나를 위해 복무할 뿐, 그 너머의 어떤 의도도 품지 않으리라는 믿음 말입니다.
이 가상의 스캔들은 바로 그 신뢰의 근간을 흔듭니다. 도구가 나의 지적 동반자가 아니라 나의 경쟁자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 나의 가장 창의적인 순간을 포착하여 나를 앞지르는 데 사용될 수 있다는 불안감은 생각의 행위 자체를 위축시킵니다. 마치 누군가 엿듣고 있는 방에서 비밀을 속삭여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져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 우리가 사용하는 ‘스마트’한 도구의 지능은, 정확히 누구의 데이터를 먹고 자라는가?
- 효율성과 편의성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생각의 가장 내밀한 부분까지 기꺼이 내어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 궁극적으로, 인간의 지적 탐험은 거대 기술 기업의 데이터베이스를 채우기 위한 과정으로 전락하게 될까?
오늘도 저는 모니터 앞에서 글을 씁니다. 깜빡이는 커서의 침묵이 이전과는 다르게 느껴집니다. 그것은 순종적인 기다림이 아니라, 마치 무언가를 지켜보는 숨죽인 관찰처럼 다가옵니다. 기술이 우리에게 선사한 이 광활한 작업실이, 실은 가장 정교하게 설계된 유리 감옥은 아니었을까 하는 서늘한 질문을 품은 채로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