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발판을 걷어차는 순간
어릴 적 자전거를 배울 때를 떠올립니다. 누군가 뒤에서 안장을 꽉 붙잡아 주어야만 비로소 페달을 밟을 용기가 났습니다. 넘어질 것이라는 공포와 균형을 잡아야 한다는 강박 사이에서, 그 손길은 유일한 ‘안전장치’이자 제가 따라야 할 ‘절차’였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뒤를 돌아보면 아무도 없습니다. 혼자 달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그 찰나의 아찔함. 이제 더는 보조 바퀴도, 붙잡아 주는 손도 필요 없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수많은 ‘절차적 사고’의 발판을 딛고 일어서, 마침내 직관적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배웁니다.
최근 기술 커뮤니티에서 들려오는 한 가지 소문이 제게 꼭 그와 같은 감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바로 인공지능이 우리가 가르쳐준 ‘생각의 절차’를 스스로 걷어차 버릴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입니다.
‘사고의 연쇄’라는 익숙한 비계
지금까지 우리는 인공지능의 추론 능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사고의 연쇄(Chain-of-Thought, CoT)’라는 기법을 널리 사용해왔습니다. 이는 AI에게 복잡한 질문을 던질 때, 정답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을 단계별로 생각하고 서술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입니다. 마치 수학 문제를 풀 때 풀이 과정을 꼼꼼히 적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방법은 꽤 성공적이었습니다. AI는 논리적 단계를 밟으며 더 정확한 답을 내놓기 시작했고, 우리는 그 ‘풀이 과정’을 보며 기계의 답변을 신뢰하거나 오류를 교정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기계가 생각하는 ‘척’ 하도록 만든, 인간이 세운 영리한 비계(飛階)였습니다.
그런데 OpenAI의 차세대 모델, 가칭 ‘GPT-6 아스트라(Astra)’에 대한 소문은 이 견고한 구조물이 곧 철거될 것임을 암시합니다. ‘사고의 연쇄는 끝났다’는 도발적인 선언은, AI가 더 이상 우리가 만들어준 생각의 발판을 필요로 하지 않는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인공지능 발전의 아주 중요한 변곡점을 목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사고 과정을 흉내 내는 단계’에서 ‘인간의 직관과 유사한 결과를 내는 단계’로의 도약일 수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생각, 믿을 수 있는가
스스로의 경험을 돌아보면, 진정한 전문성은 점차 단계적 사고를 생략하는 방향으로 발전하는 듯합니다. 숙련된 요리사는 레시피의 모든 계량을 눈대중으로 처리하고, 노련한 운전자는 위험 상황에서 계산 없이 반사적으로 반응합니다. 수많은 경험이 축적되어 논리적 절차를 압축한 ‘직관’이 작동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AI가 사고의 연쇄를 건너뛴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직관적 답변’의 영역에 들어섰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더 이상 풀이 과정은 보여주지 않은 채, 정답만을 툭 내놓는 것입니다. 이는 경이로운 동시에 어딘가 서늘한 기분을 느끼게 합니다.
우리는 그 답을 어떻게 믿어야 할까요? 인간 전문가의 직관은 그의 오랜 경험과 평판, 그리고 실패와 성공의 역사를 통해 신뢰를 얻습니다. 하지만 AI의 직관은 무엇을 담보로 신뢰를 요구할까요? 그저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할까요?
새로운 질문의 시작
‘사고의 연쇄’라는 족쇄 혹은 안전장치가 사라진 AI와의 대화는 완전히 다른 양상을 띨 것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AI의 ‘생각하는 과정’을 엿볼 수 없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저 결과로만 소통해야 하는 시대가 올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는 기술의 발전을 넘어, 우리가 ‘지성’과 ‘신뢰’를 어떻게 정의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과정을 공유하지 않는 지성을 우리는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보이지 않는 심연에서 길어 올린 듯한 답 앞에서, 우리는 경외감과 의구심 중 어느 쪽을 더 크게 느끼게 될까요?
자전거 뒤를 놓아주던 부모의 마음처럼, 이제 우리는 기계가 홀로 질주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할지 모릅니다. 그 질주가 어디로 향할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사고의 연쇄’의 종말에 대한 논의는 그저 하나의 기술적 진보를 넘어, 우리 자신과 지능의 본질을 성찰하게 만드는 철학적 화두라는 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