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AI의 등장: 스스로 일하는 기계에 대하여
최근 기술 담론의 수면 위로 ‘에이전트 자동화(Agentic Automation)’와 같이 스스로 작동하는 AI에 대한 이야기가 떠오르고 있습니다. 단순히 AI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을 넘어, 이 새로운 흐름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인문학적 감성으로 풀어보고자 합니다.
이 개념을 처음 마주했을 때, 기술의 냉혹함보다는 오히려 한 편의 짧은 사색에 잠겼습니다. 과거의 기술이 우리 손에 들린 ‘망치’였다면, 지금까지의 AI는 우리가 보낸 ‘심부름꾼’에 가까웠습니다. 하지만 에이전트 자동화는 이 비유를 넘어섭니다.
이것은 심부름꾼이라기보다, 스스로 다음 할 일을 생각하는 ‘조수’에 가깝습니다. 우리가 “시장 가서 콩나물 좀 사 와”라고 시키던 것에서, “저녁 메뉴는 된장찌개로 할까 해”라고 말하면 알아서 콩나물과 두부, 필요한 재료를 장바구니에 담고 계산까지 마치는 그림을 상상해볼 수 있습니다. 이 기술의 핵심에는 AI가 단발성 과업을 넘어, 주어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실행-평가-다음 계획으로 이어지는 순환의 ‘루프(Loop)’를 스스로 만들어 계속 돌아가게 설계되었다는 점이 있습니다. 제게는 이것이 단순한 효율의 문제를 넘어, 우리의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지점으로 느껴집니다.
인간의 노동, 그 본질을 묻다
반복의 미학, 혹은 굴레
그렇다면 우리가 하던 지루한 반복 업무는 모두 사라지는 걸까요? 바로 그 지점이 이 기술이 던지는 철학적 질문의 핵심입니다. 우리는 흔히 반복적인 노동을 ‘기계적인 일’, ‘영혼 없는 일’이라 부르며 피하고 싶어 합니다. 분명 이러한 자동화 기술은 우리를 그런 인지적 잡무(cognitive drudgery)에서 해방시킬 잠재력을 가집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때로는 그 지루한 반복 속에서 예상치 못한 발견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수없이 같은 길을 걷다가 문득 새로운 골목을 발견하듯, 반복적인 데이터 정리 과정에서 우연히 빛나는 통찰을 얻는 경험 말입니다. 만약 그 모든 ‘루프’를 기계에게 맡긴다면, 우리는 그 고리 밖에서 최종 결과물만 기다리게 될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어쩌면 과정의 지루함을 견디는 대가로 얻어온 ‘우연한 발견’의 기회를 기계에게 넘겨주는 것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제가 느끼는 희미한 불안감의 정체입니다. 모든 것을 자동화된 조수에게 맡긴 채, 우리는 과연 더 창의적인 존재가 될 수 있을까요? 혹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감각조차 잊게 될까요?
통제와 위임의 새로운 줄다리기
우리가 AI 에이전트와 상호작용하는 방식은 이제 명확한 지시를 내리는 것에서, 목표와 규칙을 설정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마치 직접 차를 모는 대신,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입력하고 경로 옵션을 선택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 변화는 인간의 역할을 재정의합니다.
과거의 AI 활용이 인간이 각 단계를 구체적으로 지시하는 ‘지휘자(Conductor)’의 역할이었다면, 이제는 AI가 스스로 단계를 설계하고 실행하도록 목표, 규칙, 제약 조건을 설정하는 ‘설계자(Architect)’의 역할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질문과 답변이 끝나면 작업도 종료되던 단발적 상호작용에서, 초기 설정 후 AI가 자율적으로 순환(Loop)하며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지속적 관계로 전환되는 것입니다. 그 결과 우리는 명령에 대한 직접적인 결과물이 아닌, 목표 달성을 위한 종합적인 결과물이나 과정에 대한 보고를 받게 됩니다.
고리 밖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새로운 조수의 등장은 어딘가 쓸쓸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저는 이 기술을 ‘대체’가 아닌 ‘증강’의 관점에서 보려고 노력합니다. 내 생각의 일부를 위임하여 더 큰 그림을 보게 만드는 도구로 말입니다. 예를 들어, 글을 쓰기 위한 자료 조사의 반복적인 과정을 에이전트에게 맡긴다고 상상해봅니다. 그 시간을 아껴 저는 자료와 자료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거나, 완전히 다른 분야의 아이디어를 가져오는 데 집중할 수 있겠죠.
중요한 것은 ‘어떤 고리를 기계에게 맡길 것인가’를 결정하는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고리는 절대로 기계에게 맡기지 않을 것인가’를 아는 지혜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대화, 한적한 오후의 산책, 이유 없는 친절 같은 비효율적이고 아름다운 고리들은 여전히 우리 인간의 몫으로 남겨두어야 하지 않을까요.
스스로 일하는 기계의 고리는 점점 더 빠르고 정교하게 돌아갈 것입니다. 그 요란한 소리 밖에서, 우리는 자신만의 고요한 사색의 고리를 지켜낼 수 있어야 합니다. 결국 기술의 가치는 그것이 무엇을 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그것으로 인해 우리가 무엇을 하게 되느냐에 달려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