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하는 아침의 풍경
매일 아침, 저는 거의 같은 순서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커피 원두를 갈고, 물을 끓이고, 필터에 원두를 담아 조심스럽게 물을 붓는 일련의 과정. 이따금 원두의 양을 조절하거나 물의 온도를 바꾸며 어제보다 나은 커피 맛을 찾아 헤매는 이 소소한 행위는, 하나의 닫힌 고리(Loop)를 이룹니다.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음 날 아침 약간의 수정을 가합니다. 더 나은 결과를 향해 미세하게 조정하며 무한히 반복될 수 있는 이 과정은, 비단 커피 내리기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무언가를 배우고, 익히고, 마침내 숙달하는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학습 방식과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AI 업계의 화두인 ‘에이전틱 AI(Agentic AI)’의 작동 방식을 접했을 때, 저는 뜻밖에도 저의 아침을 떠올렸습니다. AI가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계획을 세우고, 실행과 수정을 반복하는 ‘코드 루프’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보며, 기술의 지향점이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행위를 향하고 있음을 새삼 느꼈습니다.
도구가 아닌 조수, 생각하는 코드의 등장
지금까지 우리가 사용해온 대부분의 프로그램은 명령에 충실한 ‘도구’였습니다. 망치가 스스로 못을 박지 않듯, 코드는 정해진 명령을 순서대로 실행할 뿐이었습니다. 오류가 발생하면 작업은 그 자리에서 멈췄고, 모든 책임과 해결은 사용자의 몫이었습니다.
하지만 에이전틱 AI는 이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정의합니다. 우리는 이제 AI에게 ‘A부터 Z까지 순서대로 해’라고 지시하는 대신, ‘Z라는 목표를 달성해줘’라는 의도를 전달합니다. 그러면 AI는 목표 달성을 위해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Plan), 코드를 짜거나 정보를 검색해 실행하며(Do),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으면 문제점을 분석하고(Check), 다른 방법을 시도하는(Act) 순환 구조, 즉 ‘루프’에 진입합니다.
이는 마치 우리가 신입사원에게 일을 가르치는 방식과 흡사합니다. 처음에는 구체적인 지시를 내리지만, 점차 “이 프로젝트를 잘 마무리해주세요”라는 추상적인 목표를 던져주게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AI는 이제 수동적인 도구를 넘어, 스스로 시행착오를 겪으며 성장하는 자율적인 ‘조수’이자 ‘에이전트’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실패에서 배우는 기계의 미학
이러한 코드 루프의 핵심은 ‘실패의 내재화’에 있습니다. 전통적인 프로그래밍에서 실패(Error)는 시스템의 중단을 의미하는 불길한 신호였습니다. 하지만 에이전틱 루프 안에서 실패는 더 나은 다음 시도를 위한 가장 중요한 정보가 됩니다.
실제로 ‘웹사이트의 사용자 로그를 분석해 이탈률이 높은 페이지를 찾아 리포트를 작성하라’는 목표를 받은 AI 에이전트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첫 시도에서 잘못된 명령어로 데이터 추출에 실패했다면, 에이전트는 오류 메시지를 읽고 문제점을 파악합니다. 그런 다음 스스로 웹을 검색해 올바른 명령어 구문을 학습하고, 코드를 수정하여 다음 루프를 실행합니다. 이 과정은 목표가 완벽히 달성될 때까지 계속됩니다.
이 모습은 실패에 좌절하고 과정을 포기하기 쉬운 우리 인간에게 묘한 울림을 줍니다. 기계는 감정적 소모 없이 실패를 교정을 위한 순수 데이터로 활용하며 묵묵히 다음 단계로 나아갑니다. 어쩌면 우리는 머지않아 기계의 이러한 ‘회복탄력성’을 보며 무언가를 배우게 될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던져야 할 새로운 질문들
스스로 생각하고, 배우고, 문제를 해결하는 AI의 등장은 우리에게 편리함 이상의 철학적 질문들을 던집니다.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의 지난함을 기계에 위임할 때, 우리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게 될까요?
- 창의성의 재정의: 문제 해결의 ‘과정’이 자동화될 때, 인간 고유의 창의성은 어디에서 발현되어야 하는가? 우연한 발견과 영감의 역할은 어떻게 변할 것인가?
- 노력의 의미: ‘얼마나 노력했는가’가 아니라 ‘어떤 목표를 설정했는가’가 가치의 척도가 되는 시대가 오는가? 과정의 지난함이 미덕이 아닌 비효율로 여겨지게 될까?
- 인간의 역할: AI 에이전트가 복잡한 지적 노동의 ‘선수’가 된다면, 인간의 역할은 코치나 감독, 혹은 목표를 제시하는 구단주로 바뀌어야 하는가?
이러한 질문들에 명확한 답은 아직 없습니다. 기술의 발전이 늘 그랬듯, 우리는 새로운 도구와 함께 살아가며 그 답을 천천히 찾아 나가게 될 것입니다.
다시 아침의 부엌으로 돌아옵니다. 스스로 최적의 커피 맛을 찾아내는 AI 바리스타가 있다면 분명 편리할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아마 여전히 직접 원두를 갈고 물을 끓이며, 어제와 다른 오늘 아침의 커피 맛을 찾아가는 저만의 작은 루프를 포기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 순환의 과정 속에 저의 하루를 여는 사소한 기쁨과 성찰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