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샘 올트만의 발언, 그 원문

2026년 2월, OpenAI가 1,100억 달러 규모의 신규 펀딩 라운드를 발표하기 하루 전, 샘 올트만은 X에 이런 취지의 글을 올렸다. 비기술직 인재도 리서치 리크루팅 같은 경로를 통해 OpenAI의 핵심에 기여할 수 있다는 조언이었는데, 그 근거로 그는 최고의 리서치 팀을 만드는 요소가 “context, taste and a real feel for where the field is headed next”라고 밝혔다. 비슷한 시기 OpenAI 사장 그렉 브록만 역시 “Taste is a new core skill”이라고 썼다.

언뜻 이 말은 소박한 커리어 조언처럼 들린다. “기술이 아니어도 안목만 있으면 AI 시대에 자리를 잡을 수 있다”는 격려. 그러나 이 문장을 피에르 부르디외의 렌즈로 다시 읽으면, 전혀 다른 그림이 드러난다.

2. “Taste”라는 단어가 숨기는 것

부르디외가 『구별짓기』에서 평생 파헤친 질문은 정확히 이것이었다 — “취향은 어디서 오는가?” 그는 취향이 타고난 미적 감각이나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이 아니라, 특정 계급적 환경 속에서 체화된 아비투스(habitus)의 산물이며, 그 아비투스는 다시 문화자본(cultural capital)의 형태로 대물림된다고 보았다.

올트만의 문장에서 “taste”는 마치 누구나 갈고닦을 수 있는 중립적 역량처럼 제시된다. 그러나 이 “안목”이 실제로 어디에서 만들어지는지 물어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어떤 리서치 방향이 “장래성 있는지”, 어떤 사람이 “분야를 진전시킬 인재”인지를 감지하는 감각은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는다. 스탠퍼드·MIT 같은 특정 교육기관, 실리콘밸리의 특정 네트워크, 특정 연구실 문화에 오래 노출된 사람만이 체화할 수 있는 감각이다. 즉 올트만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능력”처럼 말하는 이 “taste”는, 부르디외의 용어로 번역하면 이미 상당한 문화자본과 사회자본을 전제로 하는 계급적 산물이다.

3. AI가 지워버린 것과 지워버리지 못한 것

AI는 그동안 계급 이동의 사다리 역할을 했던 것들을 빠르게 무너뜨리고 있다. 코딩 능력, 언어 구사력, 정보 접근성처럼 “노력하면 습득 가능한 기술 자본”은 AI 앞에서 급속히 평준화되고 있다. 이론적으로는 AI가 계급 격차를 줄이는 평등화 장치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정확히 그 지점에서 부르디외의 통찰이 섬뜩하게 들어맞는다. 기술적 격차가 지워질수록, 남는 차이는 기술로 환원되지 않는 감각 — 즉 “무엇이 좋은지, 무엇이 될 것인지”를 판단하는 안목뿐이다. 그리고 이 안목이야말로 부르디외가 말한 아비투스의 정의 그 자체다. 단기간의 훈련이나 노력으로는 따라잡기 어렵고, 오랜 계급적 배양 과정을 통해서만 “자연스럽게” 습득되는 것.

결국 AI는 계급을 평등화하기는커녕, 계급을 가르는 기준을 “능력”에서 “안목”으로 이동시켰을 뿐이다. 그리고 이 이동은 오히려 계급 재생산을 더 은밀하고 강력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코딩 실력이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결핍이지만, “타고난 감각”처럼 보이는 taste의 결핍은 본인조차 자각하기 어렵고, 그래서 계급적 원인을 개인의 선천적 한계로 오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부르디외가 지적한 오인(méconnaissance)의 메커니즘이다.

4. “새로운 핵심 역량”이라는 말의 이데올로기

브록만의 “Taste is a new core skill”이라는 선언은 이 지점에서 이중적으로 작동한다. 표면적으로는 중립적 능력론 — 누구든 배우고 기를 수 있는 스킬 — 이지만, 실제로는 이미 그 안목을 체화한 계층(실리콘밸리 엘리트, 명문대 출신, 초기 AI 연구 생태계에 접근했던 이들)의 기존 지위를 “보편적으로 필요한 능력”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효과를 낳는다. 부르디외라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지배계급은 언제나 자신들이 이미 가진 것을, 이제부터 모두가 갖춰야 할 것으로 재정의함으로써 지배를 재생산한다.

5. 결론 — 고착되는 계급, 세련되어지는 언어

AI 시대는 계급 구조를 해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작동 방식을 한 단계 더 정교하게 만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과거의 계급 재생산이 “학력”, “재산”, “인맥”이라는 비교적 가시적인 형태로 작동했다면, AI 시대의 계급 재생산은 “taste”라는 형체 없는, 그러나 결코 계급 중립적이지 않은 감각을 통해 작동한다. 눈에 보이지 않기에 더 자연스러워 보이고, 자연스러워 보이기에 더 정당해 보이며, 정당해 보이기에 저항하기 어렵다.

결국 올트만과 브록만의 “taste” 예찬은, 의도와 무관하게, 부르디외가 반세기 전에 경고했던 바로 그 메커니즘 — 계급적 특권을 보편적 미덕의 언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AI 시대에 다시 한번 반복하고 있는 셈이다.

학벌 무용론 뒤에 숨은 AI 시대의 은밀한 차별: 부르디외의 눈으로 본 샘 올트만의 트윗

학벌 무용론 뒤에 숨은 AI 시대의 은밀한 차별: 부르디외의 눈으로 본 샘 올트만의 트윗 – 샵투스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