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 지능의 역설: 모든 것을 알기에 아무것도 아닌 범용 인공지능(AI)이라는 개념이 처음 등장했을 때, 저는 마치 만능 열쇠를 손에 쥔 듯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무엇이든 물어보면 답을 주고, 어떤 문제든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지적 동반자. 그러나 최근 OpenAI가 법률 시장을 겨냥해 ‘Astra for Law’라는 서비스를 출시했다는 소식은 그 환상이 얼마나 순진했는지를 보여주는 듯합니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범용 기술이, 역설적으로 아주 구체적인 쓰임새로 포장되어야만 비로소 가치를 인정받는 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이는 마치 세상의 모든 지식을 …
10.8분의 질서, 그리고 남겨진 인간의 사유
지식의 무게와 속도에 대하여 책상 위에는 언제나 읽어야 할 책들이 위태롭게 쌓여 있습니다. 브라우저 탭은 수십 개가 열려 있고, 저장해 둔 글의 목록은 스크롤의 끝을 모릅니다. 지식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 머무는 것이라 믿으면서도, 이 끝없는 정보의 흐름 앞에서 종종 무력감을 느낍니다. 그러다 최근 한 기술에 관한 글을 읽었습니다. 4,000만 개의 문서에서 9억 개가 넘는 관계(edge)를 추출해 ‘지식 그래프’라는 거대한 지도를 단 10.8분 만에 구축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압도적인 속도와 규모 앞에서, 저는 제 책상 위의 …
AI 시대의 새로운 계급장: “안목(Taste)”이라는 이름의 문화자본
1. 샘 올트만의 발언, 그 원문 2026년 2월, OpenAI가 1,100억 달러 규모의 신규 펀딩 라운드를 발표하기 하루 전, 샘 올트만은 X에 이런 취지의 글을 올렸다. 비기술직 인재도 리서치 리크루팅 같은 경로를 통해 OpenAI의 핵심에 기여할 수 있다는 조언이었는데, 그 근거로 그는 최고의 리서치 팀을 만드는 요소가 “context, taste and a real feel for where the field is headed next”라고 밝혔다. 비슷한 시기 OpenAI 사장 그렉 브록만 역시 “Taste is a new core skill”이라고 썼다. 언뜻 …
내 책상 위 작은 실험실, 100개의 인공지능에게 말을 걸어보았다
나만의 인공지능을 찾아서 최근 손바닥만 한 크기의 새 컴퓨터를 책상 위에 들였습니다. M4 칩을 탑재한 맥 미니라는, 조용하지만 단단한 성능을 약속하는 기계입니다. 인터넷 브라우저 창을 수십 개 띄우고 고화질 영상을 편집하는 일상의 소란스러움 대신, 저는 조금 다른 종류의 호기심에 사로잡혔습니다. 바로 이 작은 상자 안에서 직접 거대 언어 모델(LLM), 즉 인공지능을 길들여보는 것이었죠. 클라우드 서버 저편에서 누군가의 규칙에 따라 움직이는 AI가 아닌, 오롯이 내 컴퓨터의 자원을 써서 나와 대화하는 존재. 그것은 마치 공공 도서관을 전전하다 …
육체를 갈망하는 인공지능, 그 두 번째 ‘순간’은 오는가
화면 밖의 지능을 기다리며 여름의 끝자락, 샌프란시스코의 8월은 으레 그렇듯 쌀쌀하고 축축한 바람이 불었습니다. 허름한 술집 뒷마당, 그래피티가 어지러운 피크닉 테이블에서는 열띤 대화가 오갔습니다. 현지 수제 맥주와 값싼 라거 사이로, ‘미국 제조업의 부활’을 외치는 젊은 목소리들이 뜨거웠습니다. 그들은 화면 속 코드가 아닌, 손에 잡히는 기술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미국에서 조달한 자석판을 자르고, 군용 드론의 전기 모터를 만들고, ‘메이드 인 아메리카’ 로봇의 구동장치를 깎아내는 일에 대한 열정이었습니다. 그들의 순수한 열의를 의심할 순 없었지만, 한편으론 회의감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
서재의 잠든 컴퓨터, 로컬 AI로 깨어난 거대한 지성
오래된 기계의 부활: 로컬 AI의 역설적 민주화 기술의 진보는 늘 우리를 조급하게 만듭니다. 어제 손에 쥔 최신 기기는 오늘 구식이 되고, 책상 아래 놓인 컴퓨터는 몇 년만 지나도 거대한 연산을 감당 못 할 낡은 고물처럼 느껴지곤 합니다. 특히 인공지능(AI) 시대에 이르러 이러한 감각은 더욱 첨예해졌습니다. 거대한 언어 모델(LLM)을 움직이는 힘은 오직 천문학적인 비용의 최신 데이터센터에만 존재한다고 믿어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최근, 이 믿음의 대전제에 균열을 내는 흥미로운 흐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불과 몇 년 전 모델인 게이밍 …
AI, 세상을 보는 눈을 사다
독자의 질문 최근 OpenAI가 스마트폰 카메라 기술 스타트업을 인수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거대 언어 모델을 만들던 회사가 왜 갑자기 ‘보는 기술’에 관심을 두는 걸까요? 단순한 사업 확장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인지, 칼럼니스트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답변: 기억의 새로운 문지기를 맞이하며 좋은 질문입니다. 저 또한 그 소식을 접하고, 기술의 흐름이 또 한 번의 변곡점을 맞이하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이는 단순히 한 기업의 사업 다각화로 해석하기엔, 그 안에 담긴 철학적 함의가 너무나 큽니다. 지금까지의 AI는 주로 인간이 남긴 기록, 즉 …
나만의 AI 비서 조립하기: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DIY
새로운 가능성의 신호 최근 온라인 기술 커뮤니티에서 ‘개인용 자율 AI 에이전트 시스템 구축 가이드’라는 제목의 긴 글 하나가 흥미로운 현상을 낳았습니다. 수십 분을 투자해야 읽을 수 있는 이 전문적인 내용에 왜 그토록 많은 이들이 열광했을까요? 마치 주말 아침, 설명서를 펼쳐 들고 손수 가구를 조립하듯, 자신만의 디지털 지성을 조립하는 미래를 상상하는 이들이 생겨나고 있다는 신호일지도 모릅니다. 과거의 DIY(Do-It-Yourself) 문화가 물질적 필요나 경제적 효율성에서 시작해 자기표현의 즐거움으로 확장되었다면, AI 에이전트를 직접 만드는 행위는 그보다 더 근원적인 욕망과 …
브레이크를 외치며 액셀을 밟는 거인들
독자의 질문: 말과 행동이 다른 AI 시대의 거인들 Q. 칼럼니스트님, 최근 엔비디아가 앤스로픽의 기업공개(IPO)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할 수 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투자금 대부분은 다시 엔비디아의 칩을 구매하는 데 쓰일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앤스로픽은 AI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개발 속도를 늦추자’고 주장해온 회사로 알고 있습니다. 이 모순적인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A. 거대한 자본의 뫼비우스 띠, 그 안의 우리 날카로운 질문입니다. 독자께서 포착하신 그 지점이야말로 지금 우리가 마주한 기술 시대의 가장 핵심적인 모순을 보여준다고 …
완벽함의 예고편, 이제 남은 것은 우리의 삶
무균실의 완벽함과 첫 번째 흠집 갓 출고된 자동차의 매끄러운 도장면을 바라볼 때, 혹은 새로 이사 갈 집의 텅 비고 깨끗한 공간을 마주할 때 느끼는 감정이 있습니다. 그것은 완벽함에 대한 짧은 경외감과, 곧 다가올 첫 번째 흠집에 대한 막연한 예감이 뒤섞인 묘한 기분입니다. 그 흠집과 얼룩들이 쌓여 비로소 그 공간과 사물은 나의 ‘삶’의 일부가 됩니다. 최근 공개된 OpenAI의 ‘프로젝트 아스트라(Project Astra)’ 시연 영상을 보며 저는 꼭 그와 같은 감각을 느꼈습니다. 스마트폰 카메라를 통해 세상을 보는 인공지능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