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쓰메 소세키는 일본 근대문학의 상징이자, 천 엔 지폐에 얼굴이 새겨질 정도로 국가적 인물로 존경받는 작가다. 하지만 그의 개인사는 겉으로 보이는 명성과는 다르게 매우 고통스럽고 내면적으로 붕괴된 사람이었다. 위장병, 불면, 신경쇠약, 심한 불안장애와 우울증에 시달리며 결국 마흔아홉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런 그가 왜 일본의 얼굴이 되었을까?

이 질문은 단지 한 작가의 인생에 대한 궁금증이 아니라, 일본이 어떤 역사를 지나왔고 어떤 정체성을 가졌는가를 묻는 질문이기도 하다.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은 서양의 제도와 문화를 급속히 받아들이며 사회 전체가 급격히 근대화되었다. 이 변화는 외형적으로는 번영을 불러왔지만, 개인의 내면에는 깊은 불안과 정체성의 혼란을 남겼다. 소세키는 바로 이 ‘근대화의 그림자’를 가장 날카롭고 예민하게 인식한 지식인이었다.

그는 영국 유학 중 극심한 외로움과 문화 충격, 인종적 소외감을 경험하며 정신적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그 경험을 단순히 개인적인 비극으로 끝내지 않고, 이후 그의 문학 안에서 ‘근대 일본인의 고통’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로 확장시켰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그 후』, 『마음』 등 그의 대표작들은 인간의 내면적 고립과 자의식, 허무를 문명비판의 시선으로 풀어낸 작품들이다.

즉, 소세키는 정신적으로 병들었기 때문에 천 엔 지폐의 얼굴이 된 것이 아니라, 병든 자아를 정직하게 마주하고 그 고통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사람이었기에 국가가 ‘근대 일본인의 표상’으로 삼은 것이다.

현대적 관점에서 보면, 오히려 그가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점은 그의 위대한 지점이기도 하다. 성공하고 안정된 삶 속에서도 끊임없이 질문하고 고통받았던 그는, 일본 사회가 겪었던 근대화의 상처를 그대로 체현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결국, 천 엔 지폐의 나쓰메 소세키는 단순한 ‘정상인’의 이미지가 아니라, 근대성 속에서 무너지고 고뇌하던 인간의 얼굴이기도 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