百結先生(백결선생) 不知何許人(불지하허인)
居狼山下(거랑산하) 家極貧(가극빈)
衣百結若懸鶉(의백결약현순) 時人號爲東里百結先生(시인호위동리백결선)
嘗慕榮啓期之爲人(상모영계기지위인) 以琴自隨(이금자수)
凡喜怒悲歡不平之事(범희노비환불평지사) 皆以琴宣之(개이금선지)
歲將暮(세장모) 鄰里舂粟(린리용속)
其妻聞杵聲曰(기처문저성왈) 人皆有粟舂之(인개유속용지)
我獨無焉(아독무언) 何以卒歲(하이졸세)
先生仰天嘆曰(선생앙천탄왈) 夫死生有命(부사생유명)
富貴在天(부귀재천) 其來也不可拒(기래야불가거)
其往也不可追(기왕야불가추) 汝何償乎(여하상호)
吾爲汝(오위여) 作杵聲以慰之(작저성이위지)
乃鼓琴作杵聲(내고금작저성) 世傳之(세전지)
名爲碓樂(명위대락)

백결선생(百結先生)은 어찌한 사람인지 알 수 없다. 낭산 기슭에 살았는데, 집안이 매우 가난했고, 옷을 백 번 씩 기워 입어 이에 사람들이 동네의 백결 선생이라고 불렀다. 일찍이 영계기의 됨됨이를 존경해서 거문고를 추구하며 무릇 즐거움, 노여움, 슬픔, 기쁨, 불평을 모두 거문고로 표현했다. 어느 연말에 동네 이웃들이 곡식을 방아질하자 그 아내가 절구 소리를 듣고 말하길, “남들은 방아질할 곡식이 있는데, 홀로 우리만 없으니, 어찌 해를 넘길꼬” 선생이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며 말하길, “죽고 사는 것은 운명에 달린 것이요 부유하고 가난한 것은 하늘에 달린 것이니, 오는 것을 막을 수 없고 가는 것을 쫓을 수 없는 법이라. 너는 어찌 슬퍼하는가. 내 너를 위하여 방아 소리를 만들어 위로하리다.” 이에 거문고를 뜯어 방아 소리를 내었다. 그것이 세상에 전해져서 〈방아타령〉이라고 한다.

– 삼국사기 제48권 백결열전

 

과거 거문고의 명인인 백결 선생은 부인과 단 둘이 살았는데 너무 가난해 옷이 다 헤져도 새 옷을 마련할 길이 없어, 누더기 옷을 백 군데도 더 기워 입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백결 선생’이라고 불렀습니다.

설날 떡 찧을 돈이 없어 마누라가 상심하자 거문고로 쿵떡 쿵떡 방앗소리를 내어 예술혼으로 부인을 위로 하였답니다.

그래서 부인은

“어머나, 영락없이 떡방아 찧는 소리네!”

하고 위로를 받아 떡국 안먹고도 잘먹고 잘 살았다 합니다.

 

 

설날 음식인 떡국을 음악적으로 찬양했다면 이번에는 시를 찾아 보았습니다.

 

 

 설날 아침에 (김종길)

매양 추위 속에
해는 가고 또 오는 거지만

새해는 그런 대로 따스하게 맞을 일이다.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가 숨쉬고
파릇한 미나리싹이
봄날을 꿈꾸듯

새해는 참고
꿈도 좀 가지고 맞을 일이다.

오늘 아침
따뜻한 한 잔 술과
한 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든

그것만으로도 푸지고
고마운 것이라 생각하라.

세상은
험난하고 각박하다지만
그러나 세상은 살 만한 곳.

한 살 나이를 더한 만큼
좀 더 착하고 슬기로울 것을 생각하라.

아무리 매운 추위 속에
한 해가 가고
또 올지라도

어린것들 잇몸에 돋아나는
고운 이빨을 보듯

새해는 그렇게 맞을 일이다.

 

아침 시인은 다행히 떡국을 먹고 이렇게 찬양의 시를 지었습니다.

만약 백결선생 패밀리가 떡국을 먹을 수 있었다면 방아타령보다 훌륭한 음악인

떡국 심포니가 우리민족의 음악으로 전수 되었겠죠?

마르크스가 말했습니다. ” 하부 구조가 상부구조를 지배한다”

즉, 하부구조인 떡국이 상부구조인 예술혼을 지배한다는 마르크스 주의 예술관이 반영된 두 작품을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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