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겐슈타인은 멘델스존의 음악을 비판했어요.

마냥 즐거운 사람만 듣는음악이라고.

예술은 원초적 충동이 있어야 하는데 , 멘델스존 음악은 너무 여성적이라는것이라는것이에요.

그는 베토벤적인것을 좋아했어요. 투쟁적인 것을 좋아했나봐요.

왜 비트겐슈타인은 이렇게 멘델스존을 비판했을까요?

비트겐슈타인과 멘델스존 누가 더 쌘가?

삶에 대한 자세 차이죠.

그런 비판이 나오게된 배경을 볼까요?

둘다 부자에요.

먼저 멘델스존.-야코프 루트비히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독일어: Jacob Ludwig Felix Mendelssohn-Bartholdy, 1809년 2월 3일 ~ 1847년 11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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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델스존의 집안은 할아버지가 칸트로부터 천재 평가까지 받던 사상가이자 사업가였구요.
아버지는 은행가 였습니다. 그의 집은 베를린의 문화예술의 중심지가 될 정도로 많은 예술가들이 출입했어요.
멘델스존집안의 집사가 푸주간의 고기 포장지에서 바하 마테수난곡을 발견할 정도로 예술적 네트워크가 있었죠.
오케스트라를 집에 초정할 정도로 부유했고, 그래서 어릴때부터 자신의 작곡을 직접 악기소리로 들을 수 있었구요.

다음은 비트겐슈타인. – 루트비히 요제프 요한 비트겐슈타인(Ludwig Josef Johann Wittgenstein, 1889년 4월 26일 – 1951년 4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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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겐슈타인은 멘델스존 보다 더 부자였어요. 유럽의 카네기라 불릴정도로 엄청난 재산을 가진 집안이었습니다.
그의 집은 빈의 문화예술의 중심이었죠.
비트겐슈타인의 천재성은 대단했구요.
그의 케임브리지 스승인 버틀란드 러셀이 말하길 “처음에 그는 나의 제자로 와서, 곧 친구가 되었고, 그다음 나의 스승이 되었다”
라고 말할 정도 였죠.

그러나 삶에 대한 자세는 달랐어요.
멘델스존은 유복하게.
비트겐슈타인은 모든 재산을 다 버리고 빵과 버터만으로 극도의 절제된 삶을 살았죠.

따라서 예술에 대한 자세도 달라요.

베토벤이 현실의 고뇌에서 힘차게 승리를 이끈다면
멘델스존은 천상으로 승리를 만들죠.

누가 더 쌜까요?

답은 비트겐슈타인이 《논리-철학 논고》(트락타투스 로지코 필라소피쿠스: Tractatus Logico-Philosophicus) 에서 말한대로 일거에요.
“서로 다른 경계가 충돌할 필요는 없다.”

관련 멘델스존의 8중주 들어봐요. 날아갈듯이 가벼운 멘델스존만의 음향을 제1바이올린이 주도적으로 만들어 갑니다.
천상의 승리를 느껴보세요. 악기 편성해서 이렇게 모이기도 힘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