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은 있으나 설명은 없는 세계

세계적인 수학자 테렌스 타오가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던진 한 가지 화두를 접하며, 저는 서랍 속 낡은 요리책을 문득 떠올렸습니다. 밑줄과 메모로 빼곡한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레시피를 그대로 따랐지만 왜 소금을 먼저 넣어야 하는지, 왜 이 온도에서 구워야 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시절이 스칩니다. 결과물은 그럴싸했지만, 그 과정에 담긴 원리는 온전히 제 것이 아니었죠. 저는 그저 충실한 모방꾼에 불과했습니다.

타오가 예시로 든 생각 실험은 이 기억을 다시금 현재로 소환합니다. 인공지능(AI)이 인류의 오랜 숙원인 암 치료법을 발견하는, 지극히 낙관적인 미래에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그러나 이 AI는 자신이 왜 그런 결론에 도달했는지 설명하지 못합니다. 그저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해 ‘정답’을 찾아냈을 뿐입니다.

이 지점에서 기술에 대한 우리의 오랜 믿음은 미묘한 균열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정답을 원했지만, ‘이해 없는 정답’을 마주할 준비는 되어있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AI가 통과한 시험, 우리가 놓친 본질

테렌스 타오가 던진 화두의 핵심은 단순히 AI의 능력을 평가하는 것을 넘어, 지식과 이해의 본질을 되묻게 합니다. 이 질문은 몇 가지 중요한 생각을 우리 앞에 놓아둡니다.

1. 효율의 극대화, 이해의 소멸

타오가 언급한 ‘Math 2.0’이라는 개념은 AI가 복잡한 증명과 계산을 대신하고, 인간은 더 높은 차원의 직관과 방향 제시에 집중하는 협업의 미래를 상상하게 합니다. 이는 분명 눈부신 효율을 약속합니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우리는 흔히 거론되는 비유를 떠올리게 됩니다. 자동차 내비게이션에 의존할수록 길을 파악하는 감각이 퇴화하는 것처럼, 과정의 수고로움을 AI에 모두 넘겨줄 때 우리는 무엇을 잃게 될까요.

우리는 목적지에 더 빨리 도착하게 되겠지만, 도시의 지리를 입체적으로 파악하는 감각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AI가 찾아준 수많은 증명 속에서, 정작 그 증명이 가진 아름다움이나 다른 분야와의 연결고리를 발견하는 인간의 통찰은 설 자리를 잃을지도 모릅니다. 이것이 제가 느끼는 첫 번째 불안입니다.

2. 설명할 수 없는 해답의 가치

다시 암을 치료하는 AI의 생각 실험으로 돌아가 봅시다. 이 AI는 생물학적 원리나 인과관계를 설명하지 못합니다. 그저 패턴을 읽어낸 결과, 특정 화합물이 효과가 있다는 결론을 도출했을 뿐입니다. 결과적으로 수많은 생명을 구했으니, 과정이야 어찌 됐든 상관없는 걸까요?

만약 인공지능이 인류의 고난을 해결할 해법을 제시했지만, 그 원리를 단 한 줄도 설명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지성’이라 부를 수 있을까요, 아니면 그저 지극히 정교한 ‘계산기’라고 불러야 할까요?

이는 기술의 효용성을 넘어 철학의 영역으로 들어서는 질문입니다. 설명되지 않는 해답은 또 다른 문제를 낳을 수 있습니다.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발생했을 때, 원리를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속수무책일 수 있습니다. ‘왜’라는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기술은 모래 위에 지은 성처럼 느껴집니다.

3. 시험은 통과했으나, 배움은 없었다

현재의 AI 모델들은 특정 과업을 해결하고 평가 기준(벤치마크)을 통과하는 데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이는 마치 시험에 나올 문제의 답안지만 통째로 외운 학생을 연상시킵니다. 그 학생은 모든 시험에서 만점을 받을 수 있겠지만, 배운 개념을 응용해 새로운 문제를 풀거나 그 지식의 의미를 타인에게 설명하지는 못할 겁니다.

AI가 각종 어려운 시험을 통과했다는 소식은 이제 놀랍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잠시 멈춰 서서 물어야 합니다. 그것이 정말로 ‘아는’ 것인지, 아니면 정답처럼 ‘보이는’ 패턴을 완벽하게 흉내 내는 것인지 말입니다. 배움의 본질이 정답 찾기에만 있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술을 통해 역설적으로 깨닫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역할은 질문하는 것이 될 것이다

테렌스 타오가 던진 화두는 AI에 대한 공포나 맹목적인 찬양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그는 다가올 시대에 인간 지성의 역할이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 것입니다. AI가 눈부신 속도로 ‘무엇(What)’에 대한 답을 찾아낸다면, 인간은 더욱 집요하게 ‘왜(Why)’와 ‘어떻게(How)’를 물어야 합니다.

AI가 제시한 정답의 맥락을 파악하고, 그 의미를 해석하며, 다른 지식과 연결해 새로운 통찰을 창조하는 것. 그것이 ‘이해 없는 정답’의 시대에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일 것입니다. 어쩌면 기술의 진정한 역할은 우리를 편리하게 만드는 것을 넘어, 우리 자신에게 ‘이해란 무엇인가’라는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지게 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