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길을 찾는 존재의 탄생
숲속에는 자주 다니는 이들의 발걸음이 모여 만들어진 오솔길이 있습니다. 의식하지 않아도 발은 자연스레 그 길을 따릅니다. 우리의 일상도 사실 수많은 ‘고리(Loop)’의 연속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내리고, 정해진 길로 출근하고, 습관처럼 이메일을 확인하는 그 모든 과정이 우리 삶을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고리들입니다.
최근 여러 기술 동향을 살피던 중, 유독 제 시선을 사로잡은 주제가 있었습니다. 바로 인공지능에게 ‘고리’를 스스로 만들고 돌게 하는 실험, 즉 특정 AI 모델을 이용해 자율적으로 작업을 반복하고, 수정하고, 완성해나가는 ‘AI 에이전트’의 개념입니다. 이는 단순히 명령에 답하는 도구를 넘어, 목표를 주고 스스로 길을 찾게 만드는, 어딘가 생명력을 불어넣는 과정처럼 느껴집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AI가 스스로 작업을 평가하고, 다음 단계를 계획하며, 목표에 도달할 때까지 피드백 고리(Feedback Loop)를 반복하도록 설계하는 접근법입니다. 마치 우리는 AI에게 망치와 정을 쥐여주고 ‘이런 모양의 조각상을 만들어 봐’라고 목표만 알려주는 조각의 스승이 되는 셈입니다.
AI, ‘생각’의 고리를 만들다
이러한 자율 에이전트의 두뇌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대규모 언어 모델(LLM)입니다. 예를 들어 앤트로픽의 클로드와 같은 최신 모델들은 방대한 양의 정보를 한 번에 기억하고 처리할 수 있는 능력(긴 컨텍스트 창) 덕분에 이 분야에서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 능력은 AI에게 일종의 ‘작업 기억’을 부여합니다.
복잡한 시장 분석 보고서를 작성하라는 임무를 받은 AI 에이전트를 상상해볼 수 있습니다. 이 에이전트는 먼저 작업 계획을 세우고, 필요한 정보를 탐색하며 초안을 작성합니다. 중요한 것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스스로 결과물을 초기 목표와 비교하며 부족한 부분을 파악하고, 다시 계획을 수정해 결과물의 완성도를 높여나가는 과정을 반복한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기계적인 반복과는 결이 다릅니다. 매번의 고리마다 이전의 결과물을 바탕으로 더 나은 방향을 ‘사고’하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저는 이 지점에서 기술의 경이로움보다는, 인간의 사고 과정을 모방하려는 시도 그 자체에 더 깊은 인상을 받습니다.
인간의 새로운 역할: 고리의 설계자
그렇다면 AI가 스스로 일하는 시대에, 우리의 역할은 무엇이 될까요. 직접 망치를 들고 돌을 쪼는 대신, 우리는 이제 어떤 조각상을 만들지, 어떤 돌을 쓸지, 그리고 잘 깎고 있는지 판단할 기준은 무엇인지를 정하는 ‘설계자’가 되어갑니다.
자율적 AI 운영의 핵심은 명확한 목표와 좋은 피드백 시스템을 제공하는 데 있습니다. AI가 길을 잃지 않도록 울타리를 쳐주고,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을 때 ‘잘하고 있다’고 알려주는 장치를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의 노동은 ‘실행’에서 ‘설계’와 ‘감독’이라는 한 차원 높은 단계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이는 꽤나 철학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목표를 설정하고 과정을 설계하는 일은 결국 가치 판단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좋은’ 결과물인지 정의하는 것은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오롯이 우리의 몫으로 남을 것입니다.
완벽한 고리가 만드는 공허함의 역설
하지만 이 완벽해 보이는 자동화의 고리에도 함정은 존재합니다. AI 에이전트는 우리가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가장 효율적인 경로를 찾아낼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목표 자체가 근시안적이거나 편협하다면 어떻게 될까요?
AI가 완벽한 형식과 논리를 갖춘 사업 계획서를 수십 개씩 쏟아낼 수는 있겠지만, 그 안에 창업가의 뜨거운 열정이나 시장의 미묘한 감성을 담아내지는 못할 수 있습니다. 효율성의 고리가 완벽하게 돌아갈수록, 오히려 과정의 깊이나 결과물의 ‘영혼’은 옅어질 수 있다는 역설이 발생합니다.
결국 기술은 우리의 의도를 비추는 거울과 같습니다. 우리가 AI에게 ‘빠르게’ 만들라고 주문하면 속도를 보여줄 것이고, ‘깊이 있게’ 만들라고 주문하는 방법을 찾아낸다면 깊이를 보여줄 것입니다. AI 에이전트의 고리를 설계하는 일은 그래서 우리 자신에게 어떤 결과물을 원하는지 묻는 과정과 다르지 않습니다.
스스로 일하는 기계를 바라보며, 저는 기술의 미래가 아닌 인간의 현재를 생각합니다. 우리가 만드는 이 지능적인 고리들이 결국 우리 자신의 욕망과 목표, 그리고 한계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새로운 도구를 손에 쥔 우리는, 이제 무엇을 만들고 어떤 길을 내야 할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시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