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시황의  병마용 입니다. 불로장생의 꿈을 이루고자 진시황이 사후에 자신의 무덤을 지키게 하려는 목적으로 병사와 말의 모형을 흙으로 빚어 실물 크기로 제작한것. 당시 많은 왕들이 무덤에 살아있는 신하나 병사를 자신이 죽을때 넣었지만 국력 감소를 우려해서 병마로 대체한것입니다.

그런데 몇년전 병마용을 보면서 장교의 모습 뿐 아니라 모든 병사들이 투구를 쓰지 않았던것이 이상했습니다.   당시 진은  100만의 군대를 보유한 가장 부유한 국가인데 왜 진의 군인들은 투구를 쓰지 않았을까요. 또 갑옷도 아주 경장 갑옷이었습니다. 당시 병마용에서 발견된 갑옷중에는 돌을 마치 마작처럼 짤라서 이어 만든 갑옷이나, 가죽 갑옷 정도 였습니다.  상대적으로 다른 국가의 군인들은 투구는 물론 중무장도 종종 있었습니다.  그것에 대한 의문은 다음과 같이 설명됩니다.

경무장 진의 승리는 병사들이 목숨을 걸고 전쟁에 임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진의 병사는 수급 하나만 가지면 밭과 집과 노비 몇명을 얻고 작위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작위의 가치를 대충 짐작하려면 진시황본기에는 메뚜기 때 때문에 식량문제가 생기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식량 천 섬을 헌납한 백성에게는 작위(爵位) 한 등급을 하사했다.라고 함으로 식량 천섬 이상에 해당하는 가치입니다. 본기에 보면 二年, 麃公將卒攻卷, 斬首三萬. 이라고 2년에는 표공이 군사를 거느리고 권(卷)을 공격해 3만여 명의 목을 베었다라는데 3만의 목을 배서 챙길 만큼 수급에 연연한 군대였습니다.

더한 예로는 수급을 쟁탈하기 위해 병사끼리 다투다 살해를 해서 빼앗은 경우에 대한 재판 기록도 남아 있습니다.  진에서는 수급 하나가 롯또였습니다. 수급이 2개면 노예인 아내가 해방되기도 하였고, 모든 인생이 바뀌는 것이었답니다.

그래서 너무 무거운 투구와 갑옷은 적을 죽이는데 방해만 될 뿐 . 이를 뒷받침 하는 기록으로  사마천은 전쟁터에서 진나라 군사들은 가슴을 내놓고 맨팔일 뿐 아니라 심지어 갑옷을 벗어버린다. 라고 기록을 하였습니다.  이런 진의 장교입니다.  실물로 볼때 압도되는 아우라를 느꼇습니다. 투구와 갑옷은 없었지만
20등급의 계급에 따라 머리모양이 다 다릅니다.

중국 역사상 최초의 통일 국가였던 진은 진취적이고 질서와 규칙을 숭상하고 무력이 모든것을 해결한다고 믿었고 그것을 장려 하기 위해 병사들이 전쟁터를 인생 롯또로 만들게끔 운영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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